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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적인 소녀 이미지

.....이영은 사람을 그리는데 그것도 한결같이 여자만을 그린다. 이영의 여자그림은 거의 소녀들이다. 소녀란 대상은 화가들이 즐겨 그리는 아주 오랜 소재다. 왜 소녀이미지에 집착할까? 사실 아이들이 그림이 주된 소재, 주제로 등장하게 된 것은 근대에 와서다.




.....근대 이전에 아이들은 그저 어른의 종속적 존재이거나 성인이 되지 못한 미성숙한 존재로 여겨졌다. 그런 의미에서 근대는 아동을 발견한 시대다. 근대에 들어와 아동의 중요성과 그 의미가 새삼 부각되거나 새롭게 설정되었던 것이다. 알다시피 근대국민국가 체제는 국민 구성원의 정체성을 심어주기 위해 집단적인 훈육 아래 어렸을 때부터 그들의 신체, 의식, 성을 국가가 체계적으로 관리하게 되었다.




.....그 국가의 축소된 모형인 가정 역시 아이들의 양육과 교육기관으로서의 중요성이 그만큼 커졌고 그에따라 아이들을 보살피는 어머니의 역할 또한 엄청 커졌다. 그래서 모자상이나 아이들과 화목한 한 때를 보내는 어머니의 모습, 그리고 아이들의 초상화가 즐겨 그려지게 되었다. 한편 동양에서 아이 이미지(동자상)는 인위적인 체계 속에서 벗어나있는, 길들여지지 않는 순박함과 천진함으로 이해되어 노장자적인 사유를 드러내는 도상으로 자주 등장했다.




.....고려청자 속의 동자이미지, 인물산수화 속의 시동 등이 그렇다. 이중섭의 군동화나 장욱진, 양달석의 그림 속에 빈번하게 등장하는 아이는 그런 전통 위에서 환생한다. 한국 근대미술은 전통적인 아이도상에 근대에 부상된 아동을 얹혀놓았다. 그런 맥락의 연장선일까. 여자아이, 그러니까 소녀이미지 역시 한국근대미술 속에서 자주 접하게 된다. 청순하고 때묻지 않는 순연한 존재로서의 이상화가 그 이미지에 투사되고 있음을 본다.




.....그것은 다분히 남성들이 지니고 있는 여성에 대한 욕망의 투사일 것이다. 그런 여자에 대한 희구가 소녀상을 호출하고 있는 것이다. 어린 시절의 소녀, 아직 타자의 욕망 속에 오염되지 않은 여성, 영원히 그 순간을 박제처럼 기념하는 소녀/여자말이다. 권진규나 임직순, 권옥연의 소녀상은 추억과 동경, 지난 시간을 함축하고 있는 이상적인 존재로 부단히 재현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소녀상에 대한 일정한 기호는 여성작가들에게도 내재화되어 그려진다.




.....이 경우 소녀들은 그림을 그리는 여성작가의 분신이나 추억 속 이미지, 혹은 자신의 여성성을 간직하는 도상이 된다. 저마다 자신만의 소녀상이란 하나의 도상을 그린다. 회임한다. 이영은 소녀들을 그린다. 어린아이이자 사춘기 소녀들 같기도 하고 더러 성숙한 여성이미지를 얼핏 보여주는 인물상이다. 아마도 작가의 어린 시절이나 지난 시간을 반추하는 이미지인 듯 하다. 결국 작가 역시 자신만의 여자상, 소녀상이란 하나의 결정적인 도상과 색채를 만들어보이고자 한다.




.....그러나 그 결정적인 도상, 색채란 만만치 않은 과제다. 그 작가만의 체취와 감성이 아찔하게 풍기는 그런 그림이 좋은 그림이다. 자신만의 도상에 대한 연마가 요구되는 것이다. 이영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정교하고 사실적인 묘사에 의해 그려지기 보다는 몽환적이고 감성적으로 매만져졌다. 불분명한 형태감, 동일 색채로 물든 통일적인 화면, 인물만을 가득 그리고 주변은 색을 머금은 붓질로 마감한 구성 속에 소녀들은 특정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인물과 배경은 분리되지 않고 배경을 채우는 색채와 붓질은 화면 속 인물을 대변하는 상징적인 의미구실을 한다. 일상의 한 순간을 고정시켜 보여주고 있다는 느낌도 든다. 턱을 괴고 앉아 상념에 잠겨 있거나 웃거나 더러 자신만의 시간과 공간 속에서 다소 고독하게, 우수에 젖어 있는 모습이다. 그 모습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제각기 추억 속의 소녀, 자신의 내부만이 저장하고 있는 이상적인 여자, 또는 자신의 유년시절, 지금은 사라진 그러나 좋았던 한 순간을 아련하게 추억하게 한다.




.....그만큼 공감각을 일으켜 주는 그림이다. 그래서인지 모호한 형태와 분홍이나 주황, 오렌지빛깔과 노랑과 파랑 등으로 다소 환각적으로 채워진 색채더미, 그리고 눈을 감고 있거나 관자와 시선을 피한 화면 속 소녀들의 눈은 그림 자체를 다분히 몽롱하게, 취하게 만든다. 결국 이 그림에서 결정적인 것은 색채다. 그려진 대상 역시 색채 속에서 떠오른다. 소녀들은 한결같이 그 색채 안에서 수줍게, 마지못해 드러난다. 조심스럽고 애틋하고 따스한 그러한 감정을 작가는 실어 나르고 싶어한다.




.....결국 이 소녀상은 작가 자신의 자화상일 것이다. 한 여자로서 자신의 성적 정체성을 가장 풋풋하게 간직하고 있었던 어느 한 순간에 대한 희구나 그리움이 물들어있다. 그 시절을, 그 순간의 이미지를 반추하고 기억해내고 형상화하는 것이다. 자신의 가장 좋았던, 꿈만 같았던 그 때를 그렇게 그리워하는 것이다. 사라지고 소멸된 순간에 대한 안스러운 추억을 기억해낸다. 고개숙인 소녀의 얼굴과 마임 같은 몸짓과 단색조의 화사한 색상으로 말이다. - 미술평론가 박영택. 2011년 12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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