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와 어망.



이쾌대/ LEE QUE DE/ 1913~1965

....."기어코 고대하던 우렁찬 북소리와 함께
.....감격의 날은 오고야 말았습니다.
.....경성의 화가들도 '뭉치자 엉키자 다투지 말자',
.....'내 나라 새 역사에 조약돌이 되자'
.....이와 같이 고귀한 표어 밑에 단결되어
.....나라 일에 이바지하고 있습니다."


.....이쾌대는 인물화에 관심이 많았다. 그의 초기 인물화의 구도와 인물 표현은 아카데믹하고 정형화 된 양상을 보인다. 그러나 미술학교 졸업 무렵인 1938년경부터는 습작을 넘어 온전한 회화작품을 완성하며 인물의 성격묘사까지 나타나는 작품을 제작했다. '2인 초상'(1938), '무희의 휴식' (1938)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이쾌대의 작품들은 1930년대 후반의 시대상황에 대한 감정을 함축적으로 나타낸 것으로 해석된다. 1938년 제25회 이과전(二科展)에서 입선한 '운명' (1938) 에는 화면 속 남자의 죽음을 대하는 인물들의 설움과 절망감이 나타난다. 이 쾌대는 이 작품을 시작으로 이과전에서 3년 연속으로 입선했다. '운명'과 같은 해에 그려진 '상황' (1938) 에는 불안과 저항이 복합적으로 표현되었다.

.....이쾌대는 초기 작품들부터 한복을 입은 인물들을 그리며 한국적인 요소에 관심을 보였다. 이는 한국적인 서양화를 지향한 작가들이 모인 조선신미술가협회에서 활동할 때에 제작된 작품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동양화적인 필선이 사용된 '부녀도' (1941), 십장생도를 연상시키는 배경 앞에 한복을 입은 여인이 앉아있는 모습을 그린 '부인도' (1943)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이쾌대는 1944년까지 도쿄와 서울에서 개최된 신미술가협회전에 참여했는데, '부인도'는 제3회 협회전 출품작이었다. 이외에도 1940년대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두루마기 입은 자화상'이 화가로서의 자의식과 한국적인 서양화를 실현시키겠다는 의지가 나타나는 작품으로 꼽힌다. 이쾌대는 푸른 두루마기를 입고 서양 중절모를 쓰고 유화 팔레트와 동양화 붓을 든 남성으로 자신을 그렸고, 등 뒤로는 초가지붕, 물동이와 짐을 이고 가는 여인 등 한국의 풍경화를 그렸다.

.....광복 이후에 이쾌대는 조선미술문화협회를 중심으로 활동했고, 1949년까지 총 4회의 회원전에 적극적으로 출품했다. 이 시기에 그는 독도 어민 참변 사건을 주제로 한 '조난' (1948), 영웅적인 인간상을 표현한 '걸인' (1948) 등을 제작했다.

.....▶'김달진미술연구소'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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