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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Jin PARK. Valley, The Never Dying Bandits. 2013. Rose, Acrylic, Glue on Paper. 150x348cm

.....실경산수의 경계를 넘나드는 서양화가 박세진

.....박세진은 풍경을 통해 우리가 살고 있는 모습을 이야기하는, 주목받는 젊은 작가다. 2007년 이후 오랜만에 작품을 선보인 그를 서울 종로 두산아트센터에서 만났다. 박세진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람들, 공간들의 모습에 집중한다. 그가 보여주는 풍경은 나를 포함한 주변에서 시작해 저 멀리 어렴풋한 곳까지 이어진다. 그 안에는 너무나 익숙해서 잘 보이지 않았던 곳, 눈으로 볼 수 없는, 그래서 상상으로만 가능한 다양한 풍경들이 물감의 얼룩과 흔적들로 만들어진다.

.....박세진의 이런 풍경은 2002년 즈음 본격적으로 화폭에 옮겨졌다. 그 첫 작품이 판문점을 대상으로 한 작품이었다. 오래전 견학차 다녀온 판문점 풍경이, 잠자던 의식을 뚫고 나온 것이었다. 실향민 가족도 아니면서 판문점이라는 장소가 특별하게 다가온 이유를 설명하기 어려웠다. 고등학교 시절에도 그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전라도 광주에서 살던 그 시절, 옥상에 올라가 먼 곳을 보는데 해수욕장이 눈에 그려졌다. 집에서 차로 몇 시간을 가야 닿을 수 있는 해수욕장이 아련한 원경으로 다가오는, 신기한 경험이었다. 자세히 살피니 해수욕장은 간데없고 구름이 그 자리에 있었다.

.....그 뒤 저 멀리 어딘가에 다른 세상이 있다는 사실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구름을 통해 해수욕장을 본 거죠. 저 멀리 있는 걸 바로 앞에서 볼 수 있었어요. 그 뒤 보이는 세상의 모든 것을 그리게 됐어요. 당연히 풍경에 집중하게 됐고요. 제 그림 속에서는 풍경이, 근경과 원경으로 연결되고 확장돼요. 마치 제 의식처럼요." 그의 관심은 풍경 중에서도 실경이다. 실경에 매료된 건 호암아트홀에서 조선 후기 산수화를 접한 게 계기가 됐다. 산에 가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실제 산의 모습을 보며 실경산수에 눈 뜨게 됐다. 그 뒤 그는 실경산수를 그리겠다고 마음먹었다.




Se-Jin PARK. Low Hills below Low Hills. 2013. Rose, Acrylic, Glue on Paper. 150x360cm

.....물론 형식과 표현은 자신의 색깔을 입혔다. 고전 서양화에 천국처럼 그려지는 원경을 도입한 것도 그만의 표현 방식이다. 세밀하게 그린 근경에 장난으로 원경을 넣었는데, 그 자체로 조화를 이루었다. 그때 그는 “원경은 변하는 않는 원형”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무열매의 즙을 재료로 활용한 것도 우연한 시도에서 비롯됐다. 우연히 열매즙을 종이에 묻혔더니 자연의 색이 그대로 살아났다. 수분이 마르면서 종이가 자연히 울퉁불퉁해졌는데 그 효과 또한 나쁘지 않았다. 열매즙에 아교를 섞으면 유화 못지않은 느낌을 준다.

.....그의 그림은 이처럼 다양한 시도 끝에 탄생했다. 그런데 그림을 보다 보면 ‘참 수월하게 그렸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박 작가는 그렇게 보이기 위해 얼마나 많은 수고가 들어갔는지 모른다고 했다.




Se-Jin PARK. Old Morning. 2007. Oil on canvas. 100x120cm

.....쉽게 그린다는 느낌을 주기 위해 50번 이상 다시 그릴 때도 있다. 논을 그려도 처음부터 하얗게 칠한 후 그 위에 다시 세 번 이상 덧칠을 한다. 탁하지 않고 맑은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그런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다. 박 작가는 그 의도가 먹혀서 "쉽게 그린다" 는 평가를 받을 때 '안 들켰구나. 성공했구나' 싶어 기분이 좋다.

....."자주 '그림이 뭘까'를 고민하면서 열심히 스케치를 해요. 가끔 '제 그림이 상상, 혹은 꿈을 그린 것'이라고 읽힐 때 분노를 느껴요. 그럴 때면 '분노를 느끼면서 실경산수를 그린다'고 말해야겠다고 생각하기도 해요. 그림을 그리다 보면 거친 야성이 나올 때가 있거든요. 저는 제 형식을 완수하기 위해 노력한 작가이기보다 실경산수를 완수하기 위해 노력하는 작가로 평가받고 싶어요."

.....'오래된 아침' 같은 작품은 박 작가의 의도가 담긴 작품이다. 작품을 보고 이국적이라는 관람객도 있지만, 그는 한국의 가을 아침 풍경이 원래 그렇다고 항변한다. 실경을 그대로 보여주기 위해서는 사물에서 눈을 떼지 않는 게 중요하다. 한국 그대로의 하늘색, 돌 색을 내기 위해서는 관찰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자연을 보는 그의 눈에는 물론 애정이 어려 있다. 유년을 함께 한 지방의 풍경과 지금 그가 살아 숨 쉬는 서울의 풍경에 애정을 담아 화폭에 옮기는 것이다. 그는 실제로 다른 어떤 나라보다 한국이 제일 예쁘다고 말했다. 그런 한국의 자연을 그릴 때 행복하다고도 했다.




Se-Jin PARK. Frost. 2012. Oil on canvas. 80x100cm

.....2007년 개인전 '골든 에이지'는 그런 화풍이 집약된 전시였다. '골든 에이지'전을 준비하면서 1년 6개월간 하루 10시간 이상 붓을 들었다. 때론 방향을 잃고 화면 속을 헤맨 적도 있다. 그럴 때면 더욱 그림에 매달렸다. "

.....유화도 원 없이 그려 봤다. 유화는 이전부터 해보고 싶던 분야였다. 하지만 유화를 하기에 상황이 허락하지 않았다. 유화 자체가 비싸기도 했고, 작업 특성상 넓은 공간이 필요하기도 했다. 또래 작가 중 일찍 주목 받은 덕에 환경도 뒷받침됐다. 원 없이 유화를 하고 그는 스스로 '해냈다'는 생각에 만족했다.

....."유화는 쌓이고, 종이는 스며드는 특징이 있잖아요. 두 가지 중 그림에 더 충실한 것이 어떤 것인가를 놓고 꽤 오랫동안 고민했어요. 제가 내린 결론은 원경에는 물감이 스며드는 종이가 잘 맞다는 거예요."

.....고비는 전시 이후에 찾아왔다. 원경에 대한 이야기로 개인전을 마치고나자 공황상태가 찾아왔다. '골든 에이지'에 모든 것을 소진한 탓에 더 이상 새로운 것을 시도할 자신이 없었다. 갈 길을 잃자 자신이 실패한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 좋은 컬렉터들에게 작품을 팔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고, 훌륭한 작가가 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한다는 극단적인 규율에 사로잡혔다. 생각은 의도와는 상관없이 상업과 순수미술 사이 어느 한 쪽을 선택해야 한다는 데까지 치달았다.




Se-Jin PARK. After Millet. 2007. Oil on canvas. 116.8x90cmx6pcs

.....작품 판매와 그에 따른 정산, 갤러리와의 관계 등도 그를 힘겹게 했다. 강박관념은 도미노처럼 다른 문제로 이어졌다. 갈수록 어려워지는 현대미술, 이해가 가지 않는 정치판, 방향을 잡을 수 없는 30대. 더 이상 방황하거나 실패할 여유가 없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자 그림 그리기가 싫어졌다. 모든 걸 멈추고 떠나고 싶었다.

....."현대미술의 시스템은 학교에서 배운 것과는 많이 달랐어요. 바젤부터 뉴욕미술관, 각종 비엔날레 등을 겪으며 짧은 시간에 그걸 경험하게 됐어요. 말끔하고 반짝반짝한 미술계와 그 이면에 서로 헐뜯는 사람들, 마음가는 대로 그림을 그리고 싶지만 어쩔 수 없이 개념적으로 작품을 설명해야 하는 현실, 매번 새로운 작품을 선보여야 하는 현대미술의 시스템 등 모든 게 벽으로 다가왔어요. 그때는 온갖 부정적인 생각이 저를 지배했어요. 어떻게 살아야 할지 정말 암담했어요."

.....그림 생각이 나지 않는 일은 뭐가 있을까를 고민하다, 지리산 자락에서 농사를 짓는 친구를 찾아 내려갔다. 그림을 내려놓는 게 마음처럼 쉽지 않았다. 습관처럼 작업실로 들어가 캔버스 앞에 선 자신을 발견하게 됐다. 한동안 시골과 서울을 오가는 이중생활이 시작됐다.




Se-Jin PARK. Landscape 1993~2002. 2002. Rose, Acrylic on canvas. 32x41cm

.....그런데 어느 날 아무렇지 않게 그려도 그림이 그려졌다. 외부가 아닌 내면을 그려도 그림이 그려졌다. 그랬더니 다시 그리고 싶은 게 많아졌다. 그러면서 그는 깨달았다. 지금까지 해온 대로 하면 되겠다고. 그러자 예전에는 서툴고 이해가 안 되던 부분도 정리가 됐다. 생각이 정리되자 그림도 마무리됐다. 이번 전시에 걸린 대부분의 작품이 이 시기에 마무리 지은 것들이다.

.....지난해 뉴욕에서 보낸 6개월은 그런 생각에 보탬이 됐다. 뉴욕 첼시의 작업실에 머물면서 처음에는 위축되기도 했다. 다른 작가들의 작품을 보며 '내 작품이 독특하구나' '나는 귀한 작가다'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기본적으로 저는 제 그림에 대체로 만족해요. 한때는 작가의 자존심을 지키는 게 중요했지만, 이젠 그것도 편해졌어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그리면 되는 거죠. 누가 알아봐 주고 인정해주는 건 고마운 일이지, 그걸로 승패가 난다는 건 어리석은 생각이에요. '지금까지 내 작품에 대해 다른 사람들의 생각은 어떨까'라는 생각을 이기는 과정이었던 것 같아요."

.....박 작가는 올 한 해 그 어느 때보다 그림에 집중할 계획이다. 당장은 올 1월 안양공공예술재단 (APAP) 의 제안으로 시작한 애니메이션을 완성해야 한다. 아직 구체적인 방향이 잡힌 건 아니지만, 화가 박세진이 본 안양의 풍경을 만화로 만들까 생각 중이다. 그는 올 12월 작업을 완료하고 내년 2월 애니메이션을 방영할 계획이다. - 한국경제매거진 제98호. 신규섭 기자. 2013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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